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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Jieun as a little kid in a 한복 and 아빠 carrying her

Letters for 아빠

by Jieun Ko

On Tuesday, September 26, 2023, at 2:38 am, in the earliest hours of the day, 아빠 took his final breath and left this world.

His name was 고승현, Seung Hyun Ko. He was born in 평택, South Korea. He came into this world on Thursday, June 30, 1960, at 4:00 in the morning. He was an 아들, a 동생, a 남편, an 아빠, and a friend. He lived for 63 years. He was known. He was loved.

After a four-year battle with metastatic non-small cell lung cancer and leptomeningeal disease — cancer of the fluid and membranes surrounding the brain and spinal cord — 아빠 died at Adler Hospice Center in Aldie, Virginia. From 2020 to 2023, he endured hundreds of rounds of chemotherapy and radiation, dozens of oncology appointments, complete right-side hearing loss, complete right-side facial paralysis, and two major hospitalizations.

엄마, my husband Greg, and I were asleep in the room with him when he took his final breath. He was surrounded by our love. We were together until the very end.

I have been writing letters to 아빠 since he died. It was a way for me to talk to him. It was a way for me to feel connected to him. It was a way for me to remember him. It was a way for me to grieve. It was a way for me to keep him alive. It was a way for me to keep myself alive.

These are the letters I wrote to 아빠 in the aftermath of his death. I wrote them in the midst of my first pregnancy with my first child, in the depths of my grief, and in the wake of his departure from this worl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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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Jieun at the cemetery next to a flower wreath
October 26, 2023: One Month without 아빠​

Hi, 아빠.

​It's been one month. 아빠가 이 세상 떠난 지 한 달 됐어. 30일.


오늘 Ahmed 하고, Mike Garcia, and Big Mike, and a bunch of people. I think, I didn't count, but I think they said it was 21 people, played golf today. Big tournament—Andy Ko Memorial Tournament 했어 오늘. And Bill이 이겼어. 32 on a 27—on the Oak Marr Golf Course. 27 is par, and Bill은 32를 맞았어, Ahmed는 33을 맞았고.

They made, like, a trophy that said, "Andy Ko Memorial, 1960-2023." And they're going to keep it—거기 Oak Marr에, 거기다가, trophy를 넣을 거야. So every year, they're going to play the tournament, and 거기 plaque, plaque에다가 Bill이름을 쓰고, 내년에 또 할 때, 이기는 사람 이름을 또 쓸 거래.
오늘 아침 9시 20분에 나갔어. That was the start—the first tee time. And yeah, I think there was like five groups, or something like that. And each group 하고 사진 찍었어. And Nancy 하고 이야기했어. Nancy가 맨날 아빠가 들어오면, Nancy가 아빠를 보고선, “앤디!” 하고 그러면, 아빠가 Nancy를 보고선, “낸시!”라고 했데.

​아빠가 돌아가신 게 너무 마음이 아프대. 아빠를 너무 좋아하고, she was saying, “Oh, he was such a nice guy. He was so nice, and he was so funny.” Oh, she said that, 그때, tournament… 작년에, October에, staff, Oak Marr Staff Tournament가 있었대. 아빠가 Nancy하고 같이 쳤다고 그랬는데. 2등으로 들어왔대. Nancy는, “아우 난 너무 못쳤다, I was so bad. 근데 너의 아빠 때문에 2등으로 들어왔다, second place.” 그때 아빠하고 친 게 너무 재미있었대.


Fred 하고도 얘기했어. Fred said, 2년 전에 아빠가 Fred를 range에 보고선, “Oh hey, do you want to volunteer here?” 그때 아빠도 volunteer 시작한 거 같은 거 같았대. So Fred said that 아빠가 Fred한테, “Volunteer! Oak Marr에 volunteer 해라!” 그랬대. 그때가 Fred가 처음으로 골프를 배우고 있었대. Retire 하고선 처음으로 시작 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그렇게 nice하게 해줘서 너무 감사했고. 기억하는 게 아빠가 맨날 Fred를 보면, “You have to do the rosary!” 묵주기도 해야 된다고 계속 얘기 했다고 그랬어. 맨날 볼 때마다, “You have to do the rosary!” Fred가 아빠가 맨날 church 나간다고, 매일 나간다고, Fred를 shame했대.

Fred가 아빠가 골프를 너무 잘 쳤데. 사람들이 다 아빠가 너무 잘 쳤데. 

오늘 그 tournament 하는데 내가 후회하는 게… 아빠가 칠 때 내가 안 나와 준게 너무 후회가 돼. 나와 줄 걸. 같이 칠걸. 같이 쳤을걸. 내가 아빠가 그렇게 잘 치는 걸 못 봐줘서 미안해. 내가 나와서 Oak Marr, 9-Hole 하는 걸 좀 봤었으면 좋았을 텐데. I wish I could’ve seen you golfing the nine holes. ​​못본게, 볼 수 없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

근데 오늘 거기 나가는데, 거기 nine—그 코스 우리가 걸었어. I think we hit Hole 5 and Hole 6? 아니, no, maybe 3 and 4? Maybe 3 and 4. 아무튼, 거기를 걷는데, 아,  왜 아빠가 여기를 맨날 나왔는지 이해가 가. 너무, it’s so pretty. And also, 기억도 나고, 내가 친 기억. 내가 high school and college에 친 기억이 떠올랐어.

​
Oak Marr 오늘 Ahmed하고 Michael하고 같이 걸었는데—엄마, Greg, 나. 근데 아빠가 왜 Oak Marr 하고 그 사람들을 좋아했는지 오늘 내가 느꼈어. 평화롭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골프만 치고, 암 있는 생각 안 하고, 아픈 생각 안 하고, 그냥 재밌고 평화롭고. 아빠가 그런 데 있었던 게 너무 좋고, 그런 사람들이 아빠하고 친구였던 게… yeah, that makes me happy.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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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Greg, 엄마, 아빠, Jieun
March 26, 2024: Six Months without 아빠

Today marks six months without you, 아빠. How have I gone six months without hearing your voice? Your laugh? How have I gone six months without a phone call, a FaceTime call, a text message, a photo, a video? How have I gone six months without hearing you breathe? How have I gone six months without you telling me, “조심 조심,“ or asking me, “뭐 해?” How have I gone six months without you here with me?

I have missed you taking off my beanie all winter and me yelling, “아빠!“ I have missed you 괴롭혀-ing 엄마 and her yelling, “고!“ or, “아저씨!” I have missed you excitedly cooking up a 새로운 meal for Greg and me. I have missed you watching me eat. I have missed you watching Greg eat and saying, “우와! 진짜 잘 먹는다!” I have missed watching you walk through the front door and changing the energy in the room with your excitement and joy. I have missed seeing you in your golf clothes.

There were so many mornings when I would catch you tucking me into bed, especially over the last four years of your life. I miss waking up to you secretly showing me that you loved me. I miss hearing you call me “우리 하나밖에 없는 딸.” I miss feeling your pride in me. I miss hearing you say, “굿 나잇,” every time you went to bed. I miss saying good night to you, too. I miss hearing your accent, your Korean, your English, your Konglish. 

I miss watching you do funny dances to make us laugh. I miss eating fruit with you while we watched 조선 movies together—you in the armchair, Greg and me on the couch, and 엄마 in her chair. I miss calling you. I miss getting calls from you. I miss getting videos from you, of you messing with 엄마, for us to laugh at together.

I miss hearing you call me 지. I miss hearing you say my name like 할머니 said it: “진아~.“ I miss eating with you. I miss driving in the car with you. I miss hugging you. I miss you hugging me. I miss yelling at you to wipe the food off your face and seeing you smile. I miss you looking at me and saying, “어떻게 이렇게 똑같냐?! 복사판! Same face!” It made you so happy that we looked the same. It makes me happy, too.

너무 보고싶어 아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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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Little kid Jieun and 아빠 golfing
June 30, 2024: 아빠’s 64th Birthday

우리 아빠에게,

생일 축하해, 아빠. 64살이네. 어떻게 벌써 9개월이 지나버렸을까? 너무 보고싶다, 아빠.아빠랑 같이 있었으면 삼겹살도 먹고, 케이크도 먹고, 골프도 쳤을 텐데.
거기서는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오늘은 내가 아빠의 촛불을 대신 불어 주고, 아빠 대신 소원을 빌어 줄게.
우리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

아빠의 하나밖에 없는 딸 지은이가

* * *

September 26, 2024: One Year without 아빠

우리 사랑하는 아빠에게,

어떻게 벌써 일 년이 지났어? 믿기지가 않아. 아빠가 떠나고 나서 앞이 너무 깜깜했지만, 어떻게든 살아왔네.

일 년 동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 아빠의 웃음소리. 아빠의 밝은 미소. 아빠의 얼굴. 아빠의 목소리. 아빠의 농담. 아빠의 요리. 아빠가 반겨주던 모습. 아빠가 안아주던 느낌. 아빠의 마음. 아빠의 사랑. 아빠의 전부.

내가 어떻게 일 년을 버텼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아빠가 옆에서 많이 도와준 것 같아. 내가 많이 힘들 때는 힘이 돼줬고, 내가 많이 슬플 때는 웃음을 줬어. 아빠의 몸은 우리 곁에 있을 수 없지만, 아빠의 영혼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는 걸 알아.

아빠, 나 애 낳았다. 아빠의 첫 손자. 아빠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 임신해서 엄마가 됐어. 상상이 안 가지? 아빠가 드디어 할아버지가 됐네. 고씨 집안에 식구가 하나 더 늘었네. 이름은 해준이고, 미들 네임은 승현이야. 아빠가 우리 곁에 있었더라면, 해준이를 너무 아끼고 예뻐했을 텐데. 많이 웃게 해 주고, 많이 안아 주고, 사랑도 많이 줬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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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Jieun and 아빠 laughing at Jieun’s wedding
해준이를 우리한테 줘서 너무 고마워, 아빠.
해준이가 아빠가 우리한테 준 큰 선물인 걸 알아.
아빠가 해준이를 벌써 만난 것도 알고.
해준이를 볼 때마다 아빠 생각이 떠올라.

아빠 손을 한 번만 더 잡을 수 있다면, 너무 좋을텐데.
아빠가 지은이를 한 번만 더 안아 줄 수 있다면, 너무 좋을텐데.
아빠 웃음소리를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다면, 너무 좋을텐데.
아빠가 지은이를 반기는 모습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너무 좋을텐데.
아빠가 지은이 이름을 한 번만 더 불러 줄 수 있다면, 너무 좋을텐데.

엄마는 아빠 없이 많이 힘들어해. 아빠가 엄마 계속 지켜 주고 도와줘

보고 싶어, 아빠. 사랑해, 아빠. 하늘만큼 땅만큼. 하늘만큼 땅만큼.
계속 씩씩하게, 열심히, 즐겁게,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할게.

아빠는 지은이 곁에 평생 있어 주고, 아빠의 기억들을 계속 내 마음속에서 담고 떠올리게 해줘.

아자 아자 화이팅.

아빠 딸 지은이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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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Family with 해준 with blue sky
January 1, 2025: New Year’s Day

오늘이 1월 1일 2025년. 엄청 춥고, 어저께는 비 왔고, 바람도 엄청 불고. 근데, 아빠 성격에는 definitely 골프 치러 나갔을 거야어, 이렇게 추운데도.

​
2024년에 엄마랑 잘 못 지내서 미안해. 더 잘 지내고 싶었는데, 아빠가 가고 나서 너무 힘들었어. 다, 우리 다. 엄마는 나를 못 도와주고, 나도 엄마를 못 도와주고. 엄마는 남편을 잃었고, 나는 아빠를 잃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엄마가 되고 있으니까. 엄마를 도와줄 힘이 없었어.

엄마가 엄청 힘들어해. 엄마가, 거기 학교 다니는 거 너무 싫어해. 아빠랑 같이 있어야 되는데, 엄마가 지금 혼자 있는 게 너무… 너무 힘들어, 보는 게. 혼자서 그 큰 집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보여. 엄마가 맨날 너무… 엄마가 지금 너무 깜깜하게 살아, 불도 안 켜고. 아빠가 거기 있었으면 맨날 불을 켜고 다녔을 텐데. 불 켤 사람이 없어.
​쓰레기 가지고 나갈 사람도 없고. 쓰레기통을 도로 bring up 할 사람도 없고. 무거운 짐을 들어줄 사람도 없고. 기름을 차 안에 넣을 사람도 없고. 혼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아빠가 해준 게 너무 많고. 아빠가 있었으면 더 웃게 해주고, 엄마를 이해해 주고, 엄마랑 얘기도 해주고, 엄마 얘기도 들어주고.

​내가 아무리 들어줘도, 나는 아빠가 아니잖아. 내가 엄마의 남편이 아니잖아.

엄마가 아빠가 가고 나서, 나한테 혼자라고 계속 그랬는데, 그게 나한테 엄청 상처였어. 혼자가 아닌데, 왜 계속 혼자라고 그래? 근데 혼자가 맞아. 우리가 있지, 당연히. 근데 매일 사는 삶은 혼자지. 35년동안 같이 살아온 사람하고는 살 수가 없으니까. 아무리 우리가 셋이라도, 엄마하고 아빠는 둘이었잖아. 그래서, 그걸 깨달았어. 내가 엄마가 되니까, 그걸 이해할 수 있어. 1년이 지나니까, 엄마를 더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어… 내 마음 속에.

아빠 웃음소리가 너무 그립다. 지금 holiday 하는데 그 energy가 부족해. 작년 holiday보다는 더 괜찮지만, 그래도 아빠의 큰 빈자리가 남아 있어. 아빠가 있었으면, 음식도 이렇게 막 해주고, 순대도 사주고, 부대찌개도 해주고, 라면도 해주고, 이렇게 막 energy가 막 돌고 있을 텐데. 아빠가 없으니까, 그 energy가 좀 덜 해, 그래서 그 빈자리가 느껴져.

그래서 내가 그냥 imagination 속에서, “아빠가 여기 있었으면, 이렇게 했을 거다…” 그렇게 계속 생각이 떠올랐어. New Year's Eve에는 the party thing, noise 나는, 이렇게 뺑뺑, 그걸 불고 다니고, 웃고, 윷놀이도 하고… 아빠는 재밌게 했을 거야. 아직도 holiday가 힘들어. 사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party하는 기분이 아니었어, 어저께. Christmas도 그렇고.

여기 오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그냥 오는 것만 해도 잘한 것 같아. 잘했어.

아빠가 해준이 보내줘서 고마워. 너무 고마워. 해준이가 있으니까, 작년하고 틀려. 1년이 지났지만, 해준이가 있는게 아빠를 replace한 건 아닌데, 그냥 그 빈자리를 좀 더 fill it up 해주는 것 같아. You know? 웃음소리도 있고, 재밌게 놀아줄 사람도 있고, 새로운 걸 보여줄 사람도 있고. 그래서 this holiday는 작년보다 덜 힘들었어. 아직도 힘든데, 좀 덜.

아빠가 우리를 1년동안... protect… 보호해 줘서 고맙고, 아빠랑 얘기 못해서 미안해. 너무 힘들어. 이렇게 얘기하는 게 어색하고 이상해. 근데 해보니까 괜찮아. 더 자주 visit하러 올게.

2025년에 복 많이 보내주고, 새해에 아빠가 주는 복도 많이 받을게. 복을 찾을게, 아빠가 보내주는 복을 찾을게, 안보이면.

오늘 매를 보내줘서 고마워. 우리를 visit 해줘서 고맙고. 어저께도 Greg랑 얘기하면서 visit 해줘서 고맙고. 보러 와 줘서 고마워. 백일도 잘 지냈어. 엄마랑, Joey 오빠랑, Johnny 오빠랑, 기석이 오빠랑, 기훈이 오빠랑, 애들이랑.

아빠 생일이… 64살, right? In June 2024년에 생일도 New York에서 보냈고.

힘든데 계속 살아가고 있어.

보고싶고, 사랑하고, 열심히 좀 살아볼게.
​아자 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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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eun Ko is a Korean writer, singer-songwriter, and artist who explores themes of grief, identity, and belonging within the Korean diaspora. Born in Seoul, Korea in September 1988, she was displaced to America through immigration at the age of two and raised on the unceded, ancestral lands of the Piscataway and Manahoac peoples (Annandale, Springfield, and Great Falls, Virginia).

She is the author of With Love, Jieun, a weekly publication about grief, identity, diaspora, and belonging. She is the singer and songwriter of the folk-soul duo, Jieun & Greg. And she is the creator of Stay Soft, Stay Open, a podcast about vulnerability, courage, and creativity. She is the only child of her working-class immigrant parents, Mijung Kwak and Seunghyun Ko (1960-2023). She lives in Pohang with her husband, Greg, and their son, Haejoon. Her name means wisdom and mercy. She is finding her way home. IG: @jieunspaceko, Patreon: @jieunko

고지은은 한국인 작가, 싱어송라이터, 예술가입니다. 그는 한국 이주민들의 슬픔, 정체성, 소속감을 탐구합니다. 1988년 9월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두 살 때 이민을 통해 미국으로 강제 이주를 겪었습니다. 피스카타웨이족과 마나호악족의 조상 대대로 살아온, 양도되지 않은 땅에서 자랐습니다 (버지니아주 애난데일, 스프링필드, 그레이트폴스).

그는 슬픔, 정체성, 디아스포라, 소속감에 대해 다루는 주간 회보 “With Love, Jieun (사랑하는 지은이가)”의 저자입니다. 또한 포크 소울 듀오 “Jieun & Greg (지은 & 그렉)”의 가수 겸 작곡가이자, 취약성, 용기, 창의성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 “Stay Soft, Stay Open (마음을 열어라)”의 제작자이기도 합니다. 고지은은 노동계급 이민자 부모인 곽미정과 故 고승현의 외동딸입니다. 현재 남편 그렉, 아들 해준과 함께 포항에 살고 있습니다. 이름 속의 '지'는 지혜로움, '은'은 은혜로움을 뜻하며, 그는 삶 속에서 안식처를 찾고 있습니다. Instagram: @jieunspaceko, Patreon: @jieun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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